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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사선 거울
Twisted Slash Mirror

거울 필름_장소 특정적 설치_2023
mirror film_site-specific installation_2023

첼리스트 지박의 탈장르 프로젝트 《음악전시: blur》 참여작이다. 첼로, 보컬, 양금, 피아노 등의 음악 공연과 설치, 영상, 조명 등의 미술 장치로 시도하는 장르, 매체 간 재매개에 설치로 참여했다.

수직, 수평 구조가 반복되는 공간에 거울 필름으로 비틀린 대각선을 그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설치물은 관객의 이동과 시야에 간섭하며 공간의 흐름을 재편한다. 그리고 비틀린 반사면 위로 쏟아지는 조명과 영상을 쪼개 공간 곳곳에 흩뿌린다. 경계는 다른 경계를 낳고, 다른 경계들로 흐려진다.

작품을 설치한 『코스모40』의 「보이드 홀」은 천고 8m, 중층 포함 1,500㎡ 규모의 거대한 공간이다. 4명의 퍼포머는 크고 복잡한 공간 여기저기서 10가지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관객은 다음 공연이 시작되는 위치로 계속 흘러 다녔다.

《음악전시: blur》 설치 디자인 노트


지박이 활동 초기부터 집중해 온 주제는 “경계 허물기”다. 이번 프로젝트 제목 《음악전시: blur》는 그것을 겹으로 나타낸다. 지박은 보통 미술 발표 방식으로 여겨지는 “전시”를 “음악”과 연결 지어 자신이 하는 작업을 좁은 의미에서의 음악으로만 대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blur(흐리기)”는 그러한 의도를 시각적으로 연상케 한다.

지박은 유학 시절 갖게 된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동양인”이라는 자기 정의, 음원을 발표하면 플랫폼마다 제각각 이루어지는 장르 규정 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개념이 자신을 구분하는 상황의 연속. 지박이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경계의 부조리는 계속 겪게 된다. 언어는 자의적 기호이므로 언어로 이루어진 개념이 긋는 경계는 왜곡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박은 "경계 허물기"를 한다. 기존의 경계가 잘라내려 드는 자신을 손톱 끝까지 지켜 내려 한다. 이 작업이 당신에게도 의미 있음을 청각과 시각으로 두드려 말한다.

 

《음악전시: blur》의 설치 디자인은 지박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했다. 음악전시를 여는 『코스모40』의 「보이드 홀」은 천고 8m, 중층 포함 1,500㎡ 규모의 거대한 공간이다. 수십 개의 기둥이 그리드를 이루며 늘어서 있다. 여느 공연 무대와 달리 비정형이고, 이동에 있어 전방위로 열려 있다.

 

이 공간을 난자하듯 갈지자로 설치된 거울 필름을 떠올렸다. 「보이드 홀」의 여러 기둥을 비틀린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거울 필름들은 수직·수평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구획을 흐리고, 반사면을 통해 공간 속에 공간을 창출한다. 거울 필름 위로 쏟아지는 조명과 영상은 거울 필름에 쪼개지고 갈라져 공간 곳곳에 흩뿌려진다.

 

바닥까지 내려온 거울 필름은 사람들의 이동이나 시야에 간섭하며 공간의 흐름을 재편한다. 퍼포머와 관객은 거미줄을 피하듯 거울 필름을 피해 공간을 오가고, 복잡해진 동선은 이전에 없던 밀도와 긴장을 바닥층에 부린다. 우리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경계의 유동을 위해 공간 경험을 흔드는 것이다.

 

거울은 보는 이를 되비추는 사물이다. 그래서 자기 성찰의 매개체로 사용될 때가 많다. 이번 설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거울 필름은 좁은 폭, 비틀림, 구겨짐 등의 상태로 대상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온전한 자신은 다른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짓는 것임을 암시한다. 또 다른 경계로서 공간을 그어대는 거울 필름은 경계가 갖는 의미를 겹으로 나타내며 반짝인다.

 

《음악전시: blur》는 퍼포머와 관객이 경계를 흐리듯 한 층에 뒤섞여 진행된다. 퍼포머는 〈blur〉 시리즈 연주와 자유즉흥연주로 경계를 허무는 음악을 짓고, 관객은 여기저기서 진행되는 퍼포먼스를 따라 건물 구조와 거울 필름, 다른 관객의 몸이 만드는 경계 너머로 몸을 움직여 이동하면서 감상을 짓는다. 그 몸짓들 속에는 모두 온전한 자신에 대한 지향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음악전시: blur》를 준비하며 상상한다. “너”와 “내”가 음악과 미술로 용해되어 “우리” 속을 헤엄치다 마침내 “나”와 “나”로 떠오르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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