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현재를 밝히는 미래 자화상의 빛

: 박호은과 송파구민들의 〈미래 조각〉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 25부작;

미래 조각

2021. 3. 1 -

석촌호수 아뜰리에, 예송미술관, 잠실생활문화지원센터

정수경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학과 교수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스마트폰 사진 폴더 속에 있다. ‘나.’ 그러나 그 폴더 속에 진짜 답은 없다. 우리가 간절히 보고자 하는 나의 모습은 카메라가 포착할 수 있는, 이미 현실이 된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결핍감에 시달리며, 언제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말 그대로 미래(未來)의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미술작품은 무엇일까? 다소 거칠게 들릴지라도, 답은 같다. 나. 내가 비춰지는 작품. 대놓고 나를 그린 초상이란 뜻은 물론 아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를 시각화했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가운데 나를 보게 되는 반조성(reflexivity)이 발휘되면 우리는 그 작품에 빠져든다. 현대미술가들이 작품을 거울에 빗대거나 직접적인 재료로 거울을 사용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제 미술향유자들도 그러한 반조적 경험에 대한 지향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심지어 요구한다. 미술작품이 작가의 것이기보다 자기의 것이기를 바라며,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작가 주도적일 때 탐탁찮게 여긴다. 어느덧 현대미술은 가장 사적인 경험을 가장 공적인 작품성의 잣대로 내세우고 있다.

《서울, 25부작;》 선정 작가 박호은은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을 대상지로 삼으면서 바로 이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현대인들의 진일보한 수용성에 주목하여 시민 참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프로젝트의 큰 주제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과 삶”이지만 3월부터 주 1회, 연령별로 3~4회 진행된 프로그램에서 제시된 다양한 세부 작업 주제들은 결국 ‘자화상’으로 수렴되었다. 8세에서 80세, 다양한 연령층 백여 명의 지역주민들이 예송미술관과 잠실생활문화지원센터에 삼삼오오 모여,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의 진행에 따라 코로나19가 갑작스레 변모시킨 삶의 조건과 그러한 변화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기’는 단순한 손감각과 표현의 일이 아니다. 우리말(그리기)에서나 영어(drawing)에서나 그 말은 다양한 대상들, 더 나아가 삶과 세상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끌어내는’ 사유의 과정을 함축한다. 비록 이번 프로젝트는 생각 끌어내기를 먼저 하고 그리기로 나아갔지만, 굳이 그 순서를 따르지 않고 주제만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해도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 사이의 혼란을 정리하여 자신의 가치관, 혹은 프레임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단순한 점이 선이 되고 형상이 되는 가운데 드러나는 독특한 그림체와 그에 더해진 색상은 그리는 사람 저마다의 고유한 성향을 드러내기에, 그리기의 끝에서 각자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미술이 지닌 치유력의 한 축이 여기에 있다.

그리기가 이런 것이라면 이는 곧장 어떻게 그리는 것이 ‘잘’ 그리는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에 대한 박호은 작가의 생각, 그리고 그의 전작들을 잠깐 떠올려 봐도 좋겠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 미대를 졸업했음에도, 그는 미술계에서의 성공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믿기 어려운 말을 한다. 자신이 관심 두는 것은 아름다움과 진리라고, 그리고 그것을 함께 논할 수 있는 동료들(colleagues)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그는 말한다. 그런데 이 쉽게 믿기지 않는 말로부터 우리는 무엇이 잘 그리는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 박호은의 답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동료란 리그(league)를 공유(co-)하고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같은 시대, 같은 삶의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호은은 동료에 대한 관심을 통해 에둘러 삶의 시대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잘 그린다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과 그 문제들에 대한 생각들을 잘 드러나게 해주는 것을 뜻하지, 기를 죽일 만큼 탁월하게 성취된 조형적 완성도를 뜻하는 것은 아닐 터. 그런 생각이 그로 하여금 주저 없이 시민 참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망설이는 지역주민들을 북돋워 그들의 작업을 작품으로 전시하게 만들었다. 진심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세상과 삶”이라는 주제로 지역주민들에게 요청된 그리기 역시 조형적으로 ‘잘 그리기’는 아니었다. 다만 이것이 자발적 참여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참여자들이 그림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평균 이상으로 선호하는 분들이었으리라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천벽력처럼 찾아온 코로나19의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이끌어내는 것, 특히 혼자 골방에서가 아니라 함께 모인 공공의 장소에서 이끌어내어 말하고 그려낸다는 것은 각각의 참여자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아마도 이번 프로젝트에서의 ‘잘’은 참여자 각자가 얼마나 자기 자신과 ‘잘’ 만나고 자기를 잘 이해하여 받아들이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과 세상의 미래를 상상해낼 수 있었는가에 달렸을 것이다.

죽음을 환기하는 강력한 공포의 역설적 미덕이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고 한다면, 코로나19 판데믹 시기 역시 자기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볼 절호의 기회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와 연관하여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작가들이 세부 프로그램을 구성한 방식이다.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마인드매핑을 시행했다. 머릿속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확산하도록 도운 셈이다. 다음으로 ‘오토매틱 드로잉’, ‘눈감고 그리기’, ‘왼손으로 그리기’, ‘스텐실 기법’ 등, 어렵지는 않지만 다소 생경한 작업 방식을 도입하였는데, 그리 되면 참여자들은 조금은 서툴고 느리게 작업하게 된다. 능숙한 작업에서 숙련도에 비례하여 의미의 휘발도 빨라지는 법이라면, 낯설고 서툰 작업의 과정은 자신이 그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그림에 새길 수 있게 해준다. ‘서툴게’가 역설적인 ‘잘’로 전환되는, 그리하여 삶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 가치를 규정하는 프레임이 섬세하게 재조정되는 놀라운 계기를 진행 작가들이 마련해준 것이다. 이러한 재조정은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로 우리에게 부과되었던 고정관념을 벗어나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수용할 수 있는 지평을 마련해준다. 그렇게 새롭고 자유로운 마음의 지평에서 참여자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과 자신의 모습에 대해 수백 장의 “미래 자화상”을 ‘잘’도 그려낸 것이다.

이 “미래 자화상”들을 모아 박호은 작가팀은 아카이브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편집하고, 피라미드 형태의 입체 조형물 두 면에 설치된 LED 디스플레이 패널에 상영되는 〈미래 조각〉으로 구현해내었다. 지역주민들의 평면적인 그림들이 박호은 작가팀에 의해 입체적인 조각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런데, 조각(彫刻)이라는 미술용어도 그 뻔한 액면가를 넘어 한자어가 품고 있는 뜻을 헤아려 보면 ‘만들고 아로새김’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래 조각이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만들고 아로새김을 의미할 터. 이는 한 달 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한 지역주민들이 했던 일이자 실은 우리 모두가 매일 같이 수행하고 있는, 일상의 의식(儀式)이 아닐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당겨 생각하고 그리면서 오늘의 나를 만들고 아로새겨나가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 조각〉은 미래를 동력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송파구민들이 꿈을 나누고 모아 만든 아름다운 지역 공동체 작업이라 하겠다.

〈미래 조각〉에는 초등학생들의 밝고 천진난만한 자화상과 코로나19의 위협으로 불안하게 요동치는 마음의 풍경, 조금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과 코로나 이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이 회복된 풍경 등이 뒤섞여 담겨있다. 피라미드 형태 조형물의 꺾인 두 삼각면에 LED 디스플레이로 상영됨으로써 영상은 선명도와 입체감을 함께 얻었고, 이로써 현저한 주목성을 획득했다. 영상에 더해진 애니메이션은 때로는 떨리는 불안감을, 때로는 상승하는 희망을 감각화하여 그림의 감정을 움직임으로 전달한다. 중간중간 그림이 없는 색면으로 보는 이들을 쉬어가게도 하고 생각하게도 하는 감각적인 영상 편집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선명히 드러나는 지점은 영상의 시작과 끝부분이다.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반복 상영되는 약 13분 분량의 영상은 분홍빛 하트와 천진난만한 초등학생의 자화상으로 시작하여 한참 동안 서로 다른 결의 그림들을 보여준다. 그러다 마지막에 다양한 세대의 자화상들이 빠른 속도로 오버랩되고, 마침내 다시 초등학생의 자화상이 환하게 클로즈업되다가 하얀 화면으로 끝을 맺는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송파구의 BI와도 닮고, 호수 건너 서울의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와도 닮은 듯한, 그러나 그 무엇보다 옆에 나란히 선 석촌호수 아뜰리에의 아담한 정원수와 가장 많이 닮은 박호은 작가의 〈미래 조각〉은 낮에는 주변 풍광을 되비추고 밤에는 지역주민들의 미래 자화상을 상영함으로써 우리 삶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 한 시절에 대한 아카이브이자 기념비로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별 뜻 없이 그 곁을 지나다 〈미래 조각〉을 만나게 된 사람들은 낮이라면 풍경 속 자신을, 밤이라면 우리 시대의 초상을 마주할 것이며, 그 가운데 누군가의 마음에는 또 다른 미래 초상이 싹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꿈은, 미래는 소리 없이 퍼져나갈 것이다. 빛으로,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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