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노트

서울시-문체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 25부작;

미래 조각

2021. 3. 1 -

석촌호수 아뜰리에, 예송미술관, 잠실생활문화지원센터

박호은

2020년대로 들어서자 시대를 구획하듯 팬데믹이 시작됐다. 상황이 이리 되었으므로 생활을 바꾸어 나가기는 했지만, 바란 적 없고 불편한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적응하지 못한 만큼 괴로움이 주어졌고, 시간은 생각이 되었다.

: 현실과 마음의 불화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 눈으로 갈등의 구조와 범위를 살펴 문제를 재정의하고, 기존 인식에서 누락된 나의 사정들을 건져 올리는 과정을 통해 변화에 따르는 저항과 화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나아갈 수 없고, 방치된 문제는 악화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장애로 남는다.

: 당장의 문제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운 좋게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하여도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보이는 기후 위기, 모든 영역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 따위가 거듭해서 어려움을 더해 갈 것이다. 지금의 어려움은 미래 연습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미술은 비가시적 문제를 인지하고 교환하는데 실질적 도움을 제공한다. 그리기와 이야기로 전환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재난을 마주하자. 웅크린 빛을 찾아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다.

《미래 조각》은 이러한 생각들에서 비롯하였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그려 낸 생각들로 만드는 디지털 조형물'을 스케치했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 진행 - 아카이브 애니메이션 제작 - 조형 전광판 상영의 세 단계 구성으로 구상을 구체화했다. 1단계에서 생산된 결과물을, 2단계에서 영상 매체로 편집하고, 3단계의 조형 작품으로 상영하는 것이다. 아래는 각 단계에 대한 설명이다.

 


1. 시민 참여 프로그램

시민들이 작가들과 함께 "코로나19 이후의 세상과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미래 자화상〉을 그려 보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는 초등학생 이상의 시민을 대상으로 삼았다. 주제 소화와 프로그램 진행 등의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였다. 그리고 참여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연령대로 반을 구분했다. 반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촘촘하게 나누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발달 차이가 큰 까닭이다. 그 외 주어진 일정과 예산, 프로그램을 진행할 작가들과의 논의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반을 정하였다. 초등학생 1-2학년 / 초등학생 3-4학년 / 초등학생 5-6학년 // 중학생 / 고등학생 // 20-30대 // 40-50대 // 60대 이상.

'진행자'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많은 회화 작가를 구하고자 했다. 총 10명의 작가를 섭외했고, 2명씩 짝을 지어 5개 반(초등학생 반, 중고등학생 반, 20-30대 반, 40-50대 반, 60대 이상 반)에 배치하였다.

'커리큘럼'은 자기 인식에서 시작하여, 주변 상황의 변화를 가늠해 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래의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것을 골조로 초안을 짰다. 그리고 그것을 각 진행자조가 맡은 반의 연령과 자신들의 개성에 따라 재구성하도록 했다. 커리큘럼이 달라지면 결과물 정리와 애니메이션 제작이 어려워지겠지만, 반별 상황에 섬세하게 대응하고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이끌어 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일정'은 일주일에 한 번씩 4회 차로 잡았고, 회차별 시간은 2시간으로 정했다. (초등학생 반은 3회 차로 잡았다.) 그리고 화-수-목요일 중에 모든 반을 배치했다. 학교나 직장을 다니는 참여자들의 일반적 일정과 진행자들의 개인적 일정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에 적당할 거라 생각하는 시간을 함께 고려한 결정이었다.

전체 '프로그램 횟수'는 41회였다. 3개의 세부 반을 3회차씩 총 9회 진행하는 초등학생 반을 제외하고, 모두 8회차로 잡았다. 중고등학생 반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분리하여 4주간 동시에 진행했고(중학생은 수요일, 고등학생은 목요일), 나머지 반은 1기와 2기로 나누어 동일한 4회 차 프로그램을 8주간 2번 진행하였다. 1, 2기로 나누어 프로그램을 진행한 반들은 1기 참여자들의 반응을 반영하여 2기 프로그램을 일부 수정하기도 하였다.

'장소'는 송파구청의 지원으로 "예송미술관"과 "잠실생활문화지원센터"를 사용했다. 초등학생 반과 시간이 겹친 중고등학생 반 외에는 모두 예송미술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송미술관은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어 부모님의 차를 타고 오는 참여자가 많은 초등학생 반을 배치했고, 잠실생활문화지원센터는 잠실역과 가까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참여자가 많은 중고등학생 반을 배치했다.

'홍보'는 송파구청에서 발행하는 구정소식지와 송파구청의 SNS 계정들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 장소와 주변 문화센터, 복지기관 등에 포스터를 붙여 이를 보완했다. 송파구는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매우 큰 편이고, 그에 따라 자치구가 지속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운영해왔던 홍보 채널들이 갖는 파급력도 강하여 홍보에 대한 부담은 많이 덜 수 있었다. 단 중고등학생 반은 입시 압력으로 참여자 모집이 어려워 송파구청의 프로젝트 담당자와 함께 주변 학교나 학원 등에 연락을 돌리고, 중고등학생이 많이 접속하는 인터넷 페이지에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2. 아카이브 애니메이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결과물들을 서사적 구성으로 배열하여 만든 영상이다.

'형식'은 애니메이션 연출로 변형한 슬라이드 쇼다. 시간적 배치로 그림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여 그림의 내용을 부수적 설명 없이 암시하고, 전체 그림을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했다. 본질은 시민 그림 아카이브이지만, 그것의 관람은 예술 체험이 되길 바랐다.

'서사'는 시민들의 그림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흐름을 따르고자 했다. 먼저 시민들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한 이야기들을 정리했고, 그 내용에 따라 그림들을 10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그리고 각 묶음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그림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이전 / 코로나19 발생과 확산 / 코로나19 이후 현실 / 코로나19 적응과 부적응 / 코로나19 거부 / 코로나19 이전으로의 회귀 갈망 / 코로나19 이후 미래 상상 / 코로나19 극복 의지 / 코로나19와 성장. 초등학생 반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날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데칼코마니들은 그림별로 분명한 의도가 있을지라도 그 내용으로 각 그림을 분류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하여 따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 이전"과 "코로나19와 성장"에서 초등학생 반의 그림은 따로 분리하여 전자는 도입부, 후자는 종결부로 삼았다. 

'연출'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위임했다. 시민들의 그림을 보며 생각한 연출 방향을 예시 콘티와 참고 영상으로 정리하여 전달하고, 가이드라인 안에서 연출자가 예시 외의 방법까지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모든 그림을 사용할 것. 일부 그림을 빼게 될 경우 참여자별 그림이 최소 한 장은 들어가도록 할 것. 그림의 내용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 온전한 전달이 어렵더라도 참여자의 의도가 곡해되지는 않도록 할 것. 새로 그려 넣는 것 없이 시민의 그림만을 이용할 것. 내용 전개를 알 수 있도록 각 장 사이를 구획하되, 해설적 텍스트로 구분하진 말 것. 조형 전광판의 특수한 레이아웃과 어울리게 화면을 구성할 것.

'사운드'는 없다. 극적 효과를 위해서는 각 장면에 맞는 효과음이나 음악을 넣는 게 유리하겠지만, 석촌호수 아뜰리에가 공연 예술 중심의 공간이고 바로 옆에 수변 무대가 있는 등 주변에 청각 예술을 다루는 곳이 많아 이 작품은 무성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3. 조형 전광판

아카이브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사각뿔 모양의 전광판이다.

'형태'는 쏟아져 내리는 어둠 속에 또렷해 지는 빛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어려움을 뚫으며 더 높이 솟아나는 미래를 암시하고자 했다. 솟아나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빗면을 일반적인 피라미드보다 가파르게 디자인했다. 빗면의 밑변과 높이 비율은 1:2다.

'구조'는 기능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광판 역할을 하는 상부, 전광판의 항온 항습을 위한 통풍구 역할을 하는 연결부, 통풍구로 물이나 흙이 들어가지 않도록 전광판을 높이는 좌대 역할을 하는 하부. 상부는 반투명 거울과 스테인리스강 프레임으로 표면을 만들고, 내부에는 작품 모양에 맞춰 제작한 LED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화면은 4개의 빗면 중 2개의 맞닿은 빗면을 채운다. 10cm 높이의 연결부는 타공망을 안쪽으로 밀어넣어 들이치는 빗물의 유입을 방지한다. 콘크리트로 제작하는 하부는 작품을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한편 전광판 작동에 필요한 전력선과 통신선을 외부 노출 없이 연결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

'반투명 거울'로 만든 표면은 주변 풍경과 관객을 비춘다. 주변의 이미지로 작품이 풍경 속에 스며들게 하고, 관객이 풍경 속의 자신을 의식하게 한다. 관객에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다른 각도를 제시한다. 빛을 내는 모니터를 내부에 숨겨 관객 내면의 빛을 암시한다. 내부의 모니터가 펼쳐 보이는 그림들을 관객들과 겹친다.

'전광판'은 일몰 후에 작동한다. 영상을 밤에만 상영하는 방식을 통해 빛의 효과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깊은 통찰은 어두운 시기에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밤처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 어려움을 제대로 마주한다면 어느 때보다 깊은 시각을 얻게 될 것이다. 작동 시간은 19시부터 21시까지다. 어둠이 내릴 때 공간을 밝히는 연출을 하되, 지역 주민의 수면을 방해하지는 않도록 시간을 정했다.

'컨디션 유지'를 위한 항온 항습 설비는 조형 전광판 제작을 맡은 업체들과의 논의와 실험을 통해 구성했다. 야외에 설치하는 전자 장비 작품인 만큼 온습도 조절이 특히 중요한데, 이번에 만드는 조형 전광판은 항온 항습 설비를 위한 기존 예시를 찾기 어려워 열과 습기에 관한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설비 구조를 짜면서 초과 사양으로 장치를 넣었다.


이 작품은 시대적 곤경에 대한 시민의 시각을 영상으로 정리하고, 조형 전광판으로 상영하는 공공장소 아카이브다. 시민에게 필요한 시각을 시민이 제시하는 통로를 만들고자 했다.

Future Sculpture poster.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