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연구생 인터뷰

권순우 큐레이터

권순우: 박호은 작가님 작업들을 살펴보면, 일관되게 ‘언어’적 상황을 다양하게 시각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들이 보입니다. 작가님의 작업은 ‘언어‘를 주요 소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박호은: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어가 아니고 사회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더군요.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든 생각으로는, ‘언어’보다는 ‘말’이라는 용어가 제 작업을 설명하기에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권순우: ‘말’이라 함은 사람의 입에서 발성되는 소리로서의 언어인 ‘구어(口語)’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박호은: 네, 그렇기도 하고.. ‘언어’는 제가 다루는 것보다 좀 더 큰 개념인 것 같아요. ‘말’은 상대적으로 음성, 구술, 현장성이 있는, 그러니까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는 어떤 소리, 의미가 있는 혹은 있다고 여겨지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다루는 부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말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상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저의 말더듬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것과 겹쳐집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이 말더듬과 연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권순우: ‘말’에 대한 관심이 작가님의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시작하셨지만, 다루는 작업들은 ‘말’을 둘러싼 사회적인 상황들에 대한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분이 말씀하셨다는 ‘사회가 주제다.’라는 지적이 아마 이때문인 듯한데, 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박호은: 그것도 근간은 제 사적 경험들일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말을 다루는 어떤 방식들에 불만이 있습니다. 제가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는데, 억세고 퉁명스러운 언어를 쓰는 곳에 있다 보니 더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문제제기를 하면, 그 내용이야 어쨌든 제가 어리고 약하니까 덮어놓고 찍어 누르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겪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그런 식의 저열한 언어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그것들에 대한 커다란 거부감이 생겼어요. 어떻게 보면 ‘말’자체 보다는 ‘말을 매개로 포착되는 억압적인 상황’이 제가 다루는 주요 소재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순우: ‘말’, ‘언어’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예술 장르로서 문학이라는 매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말’을 둘러싼 상황을 다루는데 있어, 시각미술의 영역에서 그 것들을 영상, 설치,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려 노력하시잖아요. 마치 언어적 상황을 시각화하는 것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어떤 언어적 상황을 끊임없이 다른 매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을 ‘말’자체로 이야기하지 않고, 시각화한 이미지로 반복하여 시도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박호은: 글쎄요.. 제가 말을 말로서 그대로 다루지 않는 이유는.. 언어를 ‘내가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 무력감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말더듬이라는 경험으로 언어는 제게 어떤 패배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언어 자체를 가지고 들어가게 되면 제 입장에서는 지는 싸움을 하는 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조금 다른 무기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죠. 저는 언어를 매개로 벌어진 어떤 문제를 타격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러한 타격행위가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제 작업이 단순히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려고만 한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권순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에 대해서 저는 나쁘게 받아들이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 작가님 작업 특유의 재현의 방식에 대한 지적처럼 보여요. 저는 작가님 작업이 마치 풍경을 보고 그 것을 캔버스 위에 재현하려는 페인터의 태도와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미술에 있어 ‘재현의 태도’ 자체는 지적받을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재현’을 작가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 어떤 필터를 통과시켜 나온 ‘재현’의 결과물인지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박호은: 네, 앞으로도 제 작업이 재현이라는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현실에 있는 것들을 가능한 그대로 그려내고 싶고, 무언가 ‘정확한 것’에 대한 이상한 욕망을 재현이라는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 작업에서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들 정당해요. 그 어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저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러한 ‘당연함’들이 초래하는 폭력에 대한 얘기가 될 듯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상한 도구 같은 걸 만드는 식으로, 좀 가볍게, 조형적으로 풀어내보려 합니다.

 

권순우: 작가님께서 ‘말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한 상황을 다루는데 있어, 말더듬이라는 개인적인 이유가 작가님의 작업이 추동되는 큰 원인중 하나로 보입니다. 만약에.. 말더듬이 증상이 치료가 되어버린다면, 그 때 작가님의 작업을 어떻게 될까요?

 

박호은: 고쳐질까요? 하하.. 어느 연구자에 따르면 말더듬 치료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끝나는 것이라 해요. 컨디션에 따라 말더듬이 덜할 때도 있지만, 안 좋은 상황이 되면 원래의 심각한 상태로 돌아가거든요. 핵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겉보기에 조금 나아진 건 사실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 거죠. 아쉽게도 완전히 제대로 고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하간 제 말더듬이 고쳐지게 된다면.. 글쎄요. 당연히 작업도 바뀌겠지만, 당분간은 그간 빠져있던 모종의 무력감이 관성처럼 작용해서 작업은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요?

 

권순우: 어쩌면 말더듬이 고쳐지듯이 작업도 한 번에 바뀔 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박호은: (웃음)그러게요. 저도 궁금하네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바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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