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언어의 무한 타락과 언어게임

-박호은, 〈납작한 심연〉 리뷰

 

배수연 시인

내면 언어의 방

   박호은 작가의 <납작한 심연>은 하나의 방 전체를 활용한 설치 작품이다. 깜빡이는 희미한 불빛이 전부인 어두운 공간 안에 들어서면, 관객은 곧바로 작품에 포획 당한다. 마치 커다란 지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관객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서성이며 바닥에 펼쳐진 혼란한 풍경을 읽어나가야 한다. 바닥에는 소리 없는 텍스트들이 마치 외치거나 중얼거리는 듯 사방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그 사이로 망가지거나 버려진 사물들이 흩어져 있다.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전자는 언어의 가능·불가능의 영역에 대한 물음이고, 후자는 소통의 사회적 의무와 관련된다. 박호은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에서 이 두 가지 질문을 폭넓게 다뤄온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는 언어의 생산과 작용방식을 사회적인 이슈(세월호 사건, 자살문제)를 통해 조명하는 방식도 있었다. 이는 사회적 맥락과 사건 속에서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들여다보고, 그 섬세한 층위를 미술 문법 안에서 지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이번 작품 <납작한 심연>은 여전히 언어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 작업의 연장으로 볼 수 있지만, 언어가 발생하는 공간을 작가의 외부가 아닌, 작가의 내부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둔다. <납작한 심연>은 작가의 은밀한 내면 의식의 방이자 자기 폭로의 공간이다. 관객은 자신이 작가의 머릿속에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내면 언어는 과연 순수한가?

   <납작한 심연>이 작가 의식의 풍경이라고 했을 때, 방안의 텍스트들은 자신을 향한 경멸, 기만, 억압, 연민, 협잡을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작품 속의 텍스트들- ‘도망치고 싶다’, ‘망신당하고 싶어?’, ‘그건 올바르지 않아’, ‘나는 피해자잖아’ 등-은 어쩐지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지 않는다. 각 텍스트는 서로 다른 뉘앙스와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모순되는 문장들도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거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한다.”라는 식의 표현을 할 때, 이는 우리의 내면에는 진실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과 우리가 내면을 잘 살핌으로써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두 가지 믿음을 전제로 한다. 마치 내면을 진정성이라는 보물을 숨긴 창고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내면의 고백’이라는 행위는 일관성 있고 참되며 근본적인 언어가 자기 내면에 (숨어)있어서, 개인은 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내면 언어는 그와 같이 순수할 수 있는가? 오히려 진정성이라는 강요 아래 철저하게 자신을 유린하지는 않는가? <납작한 심연>에서 바닥을 가로지르는 텍스트들은 획과 크기와 기울기-곧, 의미와 힘과 방향-을 달리한 채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내면언어의 순수성에 대한 믿음을 배신한다. 내적 언어는 무한히 침해당하며 무한히 타락한다.

* 작가는 텍스트의 폰트, 크기, 기울기 등을 달리하며 차이를 두었는데 가령, 더 심층적인 내면언어는 필기체로, 타성에 젖은 언어들은 고딕체로, 지배적인 언어는 크게, 소극적인 언어는 작게 표현하였다. 

 

무기력과 이중의 언어게임

   첫 번째 게임. 무한히 타락 가능한 내면 언어들은 서로 충돌하며 경쟁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 경쟁을 지배하는 기본 정서가 무기력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이 게임을 제어할 힘을 잃고 무너진다면, 무기력은 작가의 의식을 잠식할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무기력의 반대편에서 무기력을 주제화‧시각화함으로써 자신의 고질적 문제를 폭로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동시에 느낀다. 그 의지는 무기력을 대상화함으로써 그를 극복하려는 작가정신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두 번째 게임이 성립한다. 작품에서 무기력의 정서가 텍스트의 내용으로서 드러난다면, 무기력을 고발하고 그와 줄다리기하는 작가 정신은 전시행위(전시 과정과 전시 형태**), 곧 미술언어로 드러난다. 무기력은 미술 언어를 통해 작품의 소재가 됨으로써 작가를 온전히 지배하는데 실패한다. 실제 박호은 작가가 선택한 무기력의 시각적 은유들-내려앉은 검은 천장과 망가진 공산품들, 윤곽이 명확하게 재단된 텍스트들-은 무기력의 힘과 무게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무기력을 다루는 구성적이고 건설적인 작가의 태도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는 무기력에 맞서 무기력을 기획하고 재단한다. 과연 그의 내면은 무기력으로 납작해질 수 있는가? 작품의 제목 <납작한 심연>이 모순인 것처럼, 작품 속에서 그의 내면은 결코 납작해질 수 없다.

** 작가는 작업 과정에 사용된 도구들과 잔해들이 과정이자 결과물로 드러나도록 설정했다.

 

백기의 주인

   작품 <납작한 심연>의 텍스트와 사물들의 배치를 살펴보면, 나름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관객은 방 입구에 놓인 손전등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반시계방향으로 걷게 되는데, 특히 검은 천장이 내려앉은 방의 안쪽은 오른쪽과 왼쪽 천장의 기울기가 다르므로 자연스럽게 비교적 천장이 높은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런 동선을 따를 때(물론 다양한 동선이 가능하다.), 관객은 마지막 지점에서 세단된 백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백기를 흔드는 자, 즉 이 언어게임의 패자는 누구인가? 무기력한 자신인가, 무기력을 고발하는 자신인가? <납작한 심연>은 무기력의 엄청난 중력을, 그러나 결코 납작해지지 않는 내면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중의 언어 게임 속에서, 무기력한 자신과 고발하는 자신은 끝없이 서로 교차하며 패배와 승리를 교환할 것이다. 작가의 언어로 계속해서 자신의 패배를 말하는 한, 패배는 계속해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