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허구+현실=?

신유청의 <그을린 사랑> 리뷰

박호은

   아카데미에서 받은 공연 프로그램북을 펼치자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을린 사랑>. 동명의 영화 작품이 있었다. 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공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을린 사랑>은, 1975년에서 1990년 사이에 벌어졌던 레바논 내전에서의 주요 사건들을 차용하여, 화염처럼 들이닥치는 재앙 속에서 개인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룬 이야기다.* 신유청은 "날것의 극장"과 "상징적 소리"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 이 작품을 새로 연출하였다. 나는 이 중 "날것의 극장"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연출에 대한 언급에 앞서 작품의 줄거리와 인물들의 핵심사연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스포일러 포함.)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프로그램북』, 2016, p.7.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신화적 비극

   극은 어느 공증사무소에서 시작한다.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공증인을 통해 어머니의 유언을 듣는다. 어머니 나왈은 두 통의 편지를 각각 남매의 아버지와 오빠/형에게 전하라는 부탁을 남겼고, 쌍둥이는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오빠/형을 찾아 떠나게 된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가족을 찾아가면서 남매는 침묵 속에 잠겨 있던 모친의 삶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기독교 집안의 여자였던 나왈은 그녀가 속한 사회의 보수적 문화에 짓눌려 무슬림 난민이었던 남편과 아들을 강제로 잃었다. 몇 년 뒤 다시 자식을 찾아 나서지만, 아이가 있던 고아원은 비어 있었다. 난민들이 아들을 데려갔을 거라는 이야기에 난민들의 버스를 타고 난민촌을 향하던 중 기독교 민병대로부터 테러를 당하게 된다. 기독교도임을 밝혀 겨우 살아남은 나왈은 자신의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 이러한 폭력에 상징적 타격을 가하고자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나왈은 그곳의 고문 기술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이때 갖게 된 아이가 바로 쌍둥이 남매였다. 그리고 나왈을 강간한 쌍둥이의 생물학적 아버지 아부 타렉은,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 이슬람 반군의 저격수로 길러지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외국 군대에 붙잡혀 기독교 민병대의 고문 기술자로 만들어진, 나왈의 잃어버린 맏아들이었다.

 

날것의 극장, 1+1

   객석은 무대에 포함되어 있었다. 프로시니엄(무대 전면, 그러나 본 공연에서는 무대 후면이자 스크린)을 제외한 무대 내부의 3면을 차지하는 관객석은 디귿자를 이루며 무대를 둘러쌌다. 그리하여 관객은 배우와 같은 층을 공유하며 시선을 수평적으로 마주치게 되었고, 무대를 바라보는 다른 관객들을 함께 관람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대 설정은 때로 극에의 몰입을 강화했고, 때로 극에의 몰입을 차단했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분적 연기 연출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극의 도입부와 결말부에서 공증인 르벨이 하는 대사 일부는 대화와 방백이 겹쳐져 있었다. 르벨의 대사는 내용적으로 쌍둥이 남매를 향했지만, 형식적으로 관객을 향했다. 그 대사를 할 때 잔느와 시몽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무대에는 르벨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일시적으로 입장이 혼동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남매가 무대에 등장했고, 이들을 의식하는 르벨의 눈을 보면서 가상의 경계 밖으로 확실히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얼마간 배우의 연기력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의 특별한 연출은 대부분 관객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무대 감독의 지시 음성과 크루가 소품 옮기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다거나, 연기자가 무대 크루와 연기로 접촉하기, 한 명의 배우가 퇴장 및 재입장 없이 바로 역할을 바꾸는 모습을 통한 장면 전환 등은 심각한 이야기와 좋은 연기에 의한 극에의 몰입을 깨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연극'임을 상기시켰다. 내가 보고 있는 공간은 극장 무대였고,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었으며, 가슴 아픈 사연은 모두 허구였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균열은 연극이 닫힌 형태로 완성되는 것을 반복해서 막았다. 그래서 공연은 리허설 같았다. 나는 관객이 아니라 스태프로 참관하는 느낌이었다. 연극 놀이였다. 하나의 장난감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며 놀던 어릴 적 놀이처럼, 공증사무실에서 르벨이 앉아있던 책상은 옆으로 눕혀져 나왈과 남편 와합을 가로지르는 현실의 벽이 되었다가, 나왈의 무덤을 덮는 뚜껑이 되었다. 무거운 이야기와 가벼운 설정이 뒤엉켜 현란한 춤을 췄다.

   연출가는 이러한 연출을 "날것의 극장"이라 표현한다.** 그는 시각적 장치들로 포장하지 않은 연출을 통해 “작품이 말하는 인간 그 자체를 드러내”는 한편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주”고자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훈련되지 않은 관객이어서였을까? 신유청의 연출은 작품 속의 인간을 드러내기보다는 작품 밖의 인간을 드러내는 것 같았고, 상상을 하기에는 불친절한 서사를 따라가기 바빴다. 정작 후반부에는 주제를 반복해서 설명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연출을 이렇게 이해한다. 관객 몰입의 반복적인 이완과 수축은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것이고, 작품 속 인간과 작품 밖 인간을 하나의 인간으로, 가상의 이야기와 관객이 속한 현실을 하나의 세계로 섞으려 한 것이라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시몽이 아직 전모는 모르는 잔느에게 묻는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이 될 수는 없냐고. 나는 주인공 가족의 비극을 은유하는 이 대사가 본 작품의 연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자인 잔느는 "증명된 적 없는" "이상한" 수학 가설을 통해 1 더하기 1일이 1이 될 수도 있음을 시몽에게 설명한다.**** "날것의 극장"이 허구와 현실을 합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 증명된 적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날것의 극장"을 보고 있으면 허구가 현실 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느낌이 든다.

** 위의 책.

*** 위의 책,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열전 2016!] 연극분야 최종공연 “그을린 사랑” 홍보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1VNDg7NsTU).

**** 극 중 잔느의 대사에서 인용.

※ 2016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른 연구생의 작품을 비평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