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2021 경기청년작가초대전

박호은 : 다각선

2021. 9. 18 - 11. 14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진행: 강민지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영상: 강신대 작가

박호은 : 다각선 전시는 현재까지 진행 중인 미술관 건물공사 상황을 적극 활용하여 완성됐다. 폐유리를 소재로 선택하게 된 계기는?

 

최근 부정적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미술관의 유리벽판 일부를 철거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상황과 저의 처지를 결부지어 생각해 보게 되었고, 폐기되는 유리의 작품화를 통해 상황 전환을 비롯한 다층적 의미를 나누는 전시를 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와 작업노트에 비추어 보면 그간의 삶에서 많은 굴절이 있음을 추측한다. 무엇이 작가님을 ‘다양한 풍파’에 깎이고 씻기게 하였나?

 

일하면서 혹은 작업하면서 여러 일을 겪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제가 특별히 험난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겪은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겪은 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오래 곱씹는 성향이 저를 조형해 오는데 큰 작용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사건의 영향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자세일 텐데...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예민하고 날카로운 유리파편 더미를 다루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체력이 소요됐을 것 같다. 전시의 제작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진행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도 있다면..?

강화 유리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건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잘 몰랐던 유리의 물성 때문에 혹은 상황적 한계 때문에 일부 설치는 원래 계획을 변경하거나 폐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이 전시 주제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주제를 잘못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리고 유리가 철거 현장에서 다른 폐기물들과 뒤섞이는 바람에 불순물을 분리하고 유리를 세척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흙과 빗물로 뒤덮혀 더럽던 유리를 깨끗하게 씻어내면서 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작업이었고, 기관의 승인과 협조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동료의 조력과 기관의 배려 속에 작업하면서 새삼 작업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유리와 비닐막을 비추는 조명 역시 전시의 주요요소로 보인다. 어떤 효과를 유도하였나?

전시장 조명을 10분마다 1분씩 꺼지도록 설정해 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조명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음을 강조하기도 하면서 조명을 거두는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시는 작가의 시각을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조명에 단전 구간을 삽입하여 소격 효과를 유도하고자 하였습니다. 

조명에 부여한 의미를 뉘앙스로 암시하고자 사운드도 설치하였습니다.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는 조명이 꺼질 때 함께 꺼지면서 비워지는 느낌을 강화합니다. 
 
피아트 룩스의 사운드와 다각선

삶과 빛을 주제로 곡들을 만들고 있는 음악가 피아트 룩스가 사운드 디자인을 하였습니다. 전시 주제와 설치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고, 지금까지 만든 곡들과 유사한 느낌의 앰비언트 사운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총 두 개의 사운드 트랙을 제작하였고, 그 두 개가 번갈아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전시제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유리 파편을 보다가 프리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을 굴절시키는 프리즘. 그 유리 때문에 미술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동선이 굴절되는 것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굴절과 연결 지어 보게 되었습니다. 삶은 내 뜻과 달리 계속 꺾이게 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어 나가면, 그 삶이 그리는 선은 수많은 각으로 구부러진, 번개처럼 멋진 다각선이 될 겁니다. 그러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왜 점으로 머물지 않고 선을 그리며 나아가야 할까?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 문제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우리 삶을 선으로 만들어요. 문제는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결정할 것을 시간이나 상황이 결정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자기가 생각한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조차 없으면 우리 삶은 그냥 자연 현상이 되고 말 거예요. 삶은 단순 자연에서 도약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간의 작업에서 빛과 연계하여 투명함과 반투명함, 열림과 닫힘의 모티브를 대비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오셨다. 작가님께 빛이란 어떤 의미인지?

매 작업마다 의미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의식의 작용'이나 '인식의 매개체'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면, 이번에는 '삶의 환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며 작업을 하였습니다.
 
2019년부터 전시와 연계한 <관객의 조각>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이번 <관객의 조각>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지난 <관객의 조각>과 마찬가지로 전시 기간 동안 전시에 대한 감상을 받고, 그중 한 편을 선정하여 작성자에게 연락을 드립니다. 선정자는 전시 마지막날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에 패널로 초대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면, 우선 선정자에게 크리스탈 트로피를 증정하고, 계좌로 상금을 이체합니다. 그리고 전시를 보고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에 대해 '관객과의 대화' 참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 관객들이 주가 되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유도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이후 계획

2016년 말부터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자기조각》이라는 제목으로 저의 관점과 생활을 조형해 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가속도로 밀려드는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헤쳐 나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당분간은 계속 제게 필요한 시각을 모색하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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