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유리 프로젝트 III

박호은 : 안개

2019. 12. 9 - 12. 19

동덕여자대학교 예지관 10층 엘리베이터홀 및 복도

​박호은

안개를 만나면 긴장한다. 아련한 품 안에 사나운 모서리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까닭이다. 그래서 익숙한 길도 안개가 끼면 생경한 길이 된다. 불안하고 불편하다. 어쩌다 사고가 나면, 안개는 불현듯 거대한 손아귀로 바뀌고, 나는 실제보다 작게 우그러진다. 나는 자주 그런 식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삶에는 항상 안개가 끼어 있었다. 확실한 것은 드물었고, 어떤 길이든 생각지 못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는 삶의 조건이다. 나는 제거할 수 없는 안개를 거부하는 것을 그만 두고, 안개를 배우기로 했다. 안개는 판단을 보류하게 한다. 알고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상기시킨다.

 

안개를 빚는다. 구체적 풍경은 추상적 화면이 되고, 갑갑한 간격은 성찰의 여백이 된다. 문자를 읽은 것이 문장을 이해한 것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거듭 안개를 펼쳐 자동적 판단에 제동을 건다. 힘들다. 아무래도 갑갑하다. 그래도 익혀야 한다. 그래서 익혀야 한다. 안개는 구속이 아니다. 해방이다.